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돌프 히틀러 (문단 편집) ==== 영향 받은 학설들 ==== 히틀러가 가장 존경하는 미국인으로 미국 [[포드 자동차]]의 창업주인 [[헨리 포드]]를 꼽았는데 <나의 투쟁>에 반영된 상당수의 유대인 비판이 헨리 포드가 쓴 <국제유대인>이라는 문헌과 똑같다.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아예 포드의 주장을 히틀러가 <나의 투쟁>에다가 전부 베꼈다고 해도 될 정도다. <국제유대인>의 한국어판도 나와있는데 읽어보면 나치의 유대인 비판 내용과 완전히 똑같은 대목이 대부분이다. <국제유대인>은 포드가 1920년대에 배포한 4권의 반유대주의 책자인데 이 문헌에서 미국 유대인 재벌 [[제이콥 쉬프]]같은 인물이 국정실패의 탓을 유대인에게 전가하려고 유대인을 탄압하던 러시아 왕정을 무너트리기 위해 [[레닌]]과 [[트로츠키]]에게 러시아 혁명 자금을 지원한 사실 등을 비난하며 유대인-공산주의자의 커넥션을 고발하고 있다. 이는 역사적 사실이기도 한데, 포드는 제조업의 아버지로서 미국의 유대계 금융업자들의 이같은 행태에 상당히 불만이었다. 미국 사회에서 유대인의 문제점들을 대대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헨리 포드는 히틀러한테 선거 자금으로 쓰라며 7만 달러를 지원할 만큼 나치독일에 우호적이었고 그 답례로 나치로부터 독일 정부가 외국인한테 주는 최고의 훈장인 독일 독수리 훈장을 수여받기도 했다. 실제로 제이콥 쉬프같은 유대 재벌은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일본 제국에 자금을 지원하고 메이지 천황을 알현했고 일본 천황은 차관 제공에 대한 무한한 감사를 표했다. 이는 결과적으로 [[러일전쟁]]의 일본 승리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https://en.wikipedia.org/wiki/The_International_Jew|#]] 헨리 포드의 '국제유대인'에 대한 정확한 설명을 볼 수 있다.] 물론 그 포드도 소련에 자동차 공장을 세우며 [[소련]]의 경제성장과 군비확장에 도움이 된 인물이라는 것은 함정이기는 하다. 아르투어 딘터는 아리안인과 타인종의 결혼을 반대하며 인종의 순수성 보존을 주장했던 사상가다. 아돌프 히틀러는 그의 영향을 받았음이 확실하다. 아르투어 딘터는 1925년부터 나치당 튀링겐 대관구장을 지냈다가 "나치당 안에 입법부를 만들자!"고 아돌프 히틀러의 권위에 홀로 도전하다 1928년 쫓겨난다. [[루돌프 헤스]]의 스승이었던 하우스호퍼 교수의 게르만족의 동부생활권(레반스라움)도 <나의 투쟁>에서 차용했다. 당대 독일 지식인들에게 널리 읽힌 하인리히 폰 트라이치케의 <19세기 독일사>와 오스발트 슈펭글러의 <서구의 몰락>은 아돌프 히틀러가 직접 읽진 않았어도 당시 유행했던 사조로서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슈펭글러의 다른 저서 <프로이센주의와 사회주의>(1920년)에서는 민족 전체가 독재자 아래 일치 단결하는 초계급적 민족사회주의가 제창된다. 보수혁명론자 아르투어 묄러 판 덴 브루크(Arthur Moeller van den Bruck)는 낡은 것이 젊은 것에 패하는 것은 이치라며 독일의 패전을 합리화했고, 그의 저서 제3제국(Das Dritte Reich, 1923)에서 낡은 독일은 보수혁명을 통해 서구의 자본주의와 러시아의 공산주의 같은 외세의 이념에 대항하고 민주주의에 반대하는 권위주의적인 "민족사회주의"라는 이념으로 통치되는 "제3제국"을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 주장은 나치에 상당한 영향을 끼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